프란츠 마텐클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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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편집]
마텐클로트는 1884년 독일제국 동부 그륀베르크 인 슐레지엔[1] 에서 테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설탕 공장주였으며 사임한 대위였다. 그는 고등학교 교육을 마친 후 1903년 메스 지역에서 독일군에 지원하게 된다. 1903년 12월 8일 그의 군 생활이 시작되었고, 마데부르크 보병 제 2연대에 배치되었다. 그때 당시 중위였다. 전쟁중 철십자 훈장 2급과 1급을 다 수여받았으며, 1차세계대전이 끝났을때 최종계급은 대위였다.
1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그는 국가방위군에 남았다. 그는 스타르가르트슈체친스키연대에 배치받았으며, 이 연대는 1935년 10월 15일에 제 25연대로 이름이 바뀌었다.
독일 국방군으로 바뀐 1938년 3월 1일에 소장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하기 전에는 트리어 방어부대를 지휘했다.
2. 제2차 세계대전[편집]
2.1. 프랑스 침공[편집]
1939년 9월 19일, 마텐클로트의 사단은 72 보병사단으로 재편성하게 된다. 그리고 1940년 2월 1일, 마텐클로트는 중장이 되었다. 72 보병사단은 프랑스 침공에 참전하는데 당시 사단이 열등한 단위로 구성되어 있어서 전투에 참여를 잘 못했다. 72보병사단의 한 참전용사는 본인이 숲에서 프랑스 진지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작은 교전만 경험했다. 마텐클로트는 공중보급을 잘 못해서 자신의 부하들에게 바보라고 불렸다. 72 보병사단이 프랑스를 점령한 이후 마텐클로트는 5주동안 메스의 사령관이 되었다가 다시 72 보병사단으로 복귀하였다.
2.2. 그리스 침공[편집]
프랑스에서의 전투 이후 72 보병사단은 그리스 침공 배치되었다. 제72 보병사단은 빌헬름 리스트의 제12군, 프란츠 뵈메 의 XVIII 산악군단의 사단장으로 배치되었다.
나치독일은 그리스 침공에서 중무장한 그리스군의 방어선인 메탁사스 라인을 돌파해야했다. 그리스에서 마텐클로트의 부대는 네베러코프의 남서쪽 방어선을 돌파하고 세레스까지 남서쪽으로 더 진행 한 다음 북쪽으로 돌아서 루펠 요세을 뒤에서 공격하여 좁은 계곡을 가로 지르는 중요한 국도를 점령하는 목표를 얻었다. 그러나 72보병사단은 메탁사스 방어선을 뚫지 못했다. 결국엔 4월 9일 그리스군은 항복했고, 6월에는 크레타섬을 점령을 시작했다.
2.3. 독소전쟁[편집]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그의 부대는 루마니아에 있었다. 남부집단군에 배치되어 러시아 남부를 침공하였고 그의 부대는 1941년 늦가을에 세바스토폴 공방전에 참전한다. 그는 세바스토폴 공방전에서 지휘력을 인정 받아 기사철십자훈장을 수훈받았다[2] . 그후 몇달 동안 에리히 폰 만슈타인 보병대장과 함께 세바스토폴을 포위했다. 그리고 마텐클로트는 이곳에서 민간인 학살을 명령했다. 이후 42군단의 사령관이 되어 쿠르스크 전투에 참여하긴 했으나 세바스토폴 공방전때와 같은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다.
2.4. 서부전선[편집]
독소전쟁이후 그는 5군단에 사령관이 되어 서부전선으로 갔다. 마텐클로트와 그의 부대는 파데본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4월 1일, 알베르트 케셀링에게 파데론은 함락되었다고 전하였다. 며칠뒤 그는 렘고의 시장을 이유없이 사형시켰다.[3] 그리고 몇주 뒤, 그는 연합군에게 항복했다.
3. 전후[편집]
마텐클로트의 독소전쟁에서의 전쟁범죄는 인정되었다. 그는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을 뿐만 아니라 민간인 학살을 한 아인자츠그루펜을 기뻐하였다. 그러나 건강상의 문제로 실제로 구속되지는 않았다. 결국 69세의 나이에 서독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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